전화벨 소리에 철렁인다. 피해서 도망갔던 할아버지 댁. 거의 여름방학 내내 있었어.
그날은 유난히 해가 길고 땅거미도 길게 떨어지던 오후였어. 다 옥수수 따러 나갔는데 나는 방에 누워서 자고 있었거든. 근데 전화가 계속 울려. 누군지는 직감으로 알아. 아빠야. 끝도 없이 울려. 할아버지가 잠깐 들어온 새에 또 전화가 온 거라 받았더니 아무 말 없이 끊더래. 그러고는 또 전화를 해. 내가 받을 때까지. 그래서 지금도 전화 소리만 들리면 심장이 뚝 떨어져.
엄마가 교회 가는 걸 병적으로 싫어해서 정말 지독하게도 싸웠어. 새벽 기도 가면 문 잠그고 나한테 문 열어주면 죽어버린다는 둥 어쩌고 어쩌고 정말 기억하고 싶지도 않은 말을 엄청나게 했지. 아빠는 무섭고 엄마 문은 열어줘야겠고 가운데 있던 나는 뭐 어쩌라고. 암튼 나는 그렇게 이렇게 자랐어. 하고 싶은 말 너무 많지 정말 아무에게도 하지 못했던 말들 정말 너무너무너무너무 많아. 문이 깨지고 경찰이 왔다가고 응급실 실려 가고 아주 드라마도 이런 드라마 없을 거야. 나는 너무~~ 많이 울었고 너~~무 힘들었어.
아니 암튼 전화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, 나 일할 때 전화 오는 거 진짜 완전 극혐이란말야. 더구나 일하는 중에 매장 전화로 아빠 사고 소식을 들었던 적도 있어서 그냥 전화벨 소리 울리면 공포야 나한텐. 매장 전화야 받지만 핸드폰으로 온 전화는 절대 안 받는데 요새 정말 큰일이 있었고 목요일 재판 땜에 또 무슨 일 생겼나 걱정돼서 받았는데 엄마랑 통화됐냐며 술이 잔뜩 취해서 물어. 시발 것 진짜 미친 걸까? 교회 갔나 보지 하고 끊었는데 열시 넘어서 또 전화가 오는 거다. 아 작작하라고 엄마 열한시면 갈 거라고 하고 끊었는데 뭐라 했게 엄마 도망갔나 봐 이 지랄을 하는 거다. 정말 기도 안 차서..
마감 치는데 엄마한테 전화 왔어 하... 집 와서 떡 먹으라고 잘라주면서 핸드폰 보여주는데 부재중 23통 와있더라. 엄마가 아주 웃겨서 눈물 났대. 음성사서함에 남긴 메시지도 들었거든? 진짜 가관이야 이걸 죽일 수도 없고 어쩌지? 하.. 이렇게 심드렁하게 넘길 수 있기까지 얼마나 걸렸을 것 같아? 휴~
아 진짜 안 살고 싶다. 내가 살아야 할 이유가 뭘까.
음~~ 없는 것 같아.